난을 왜 키우나요?
가까운 친구들뿐만 아니라 간이 난 실이 있는 내 사무실을 방문한 사람들도 한결같이 묻는 질문입니다.
가격도 비싸다고 하던데, 키우기도 어렵다고 하던데, 장기 출타도 할 수 없다고 하덴데 왜 키우나요?
내 주위에는 난을 잘 아는 사람이 거의 없는데 평생 해오던 직업이 식물하고 너무 멀어서 그런지도 모르죠.
난 재배의 이력을 계산해보니 그럭 저럭 한 35년 정도 되었네요.
남들처럼 전문 난실을 만들어 키우는 소위 꾼도 아니고 이사를 다녀도 난을 키울 수 있는 베란다가 없으면
아무리
좋은 집이라도 마다 했는데 다행히 근년에 마련한 사무실에 조금 넓은 베란다가 있어 샤시를 하고 인조잔디를
까니
아늑한 난 실이 되어 하루 종일 난을 보면서 일을 하니 살아가는 즐거움이 대단하네요.
내가 처음에 난을 시작했을 때 우리나라에는 난이 없었는데 지금의 우리나라는 빗나간 애국심이 가득 차고 잡상인이
가득한 장사꾼 중심의 혼탁한 한국춘란 세상이 되어 있네요.
나는 1980년대 중반 5공시절
때 대기업의 일본동경의 주재원생활을 시작했는데 마침 신쥬쿠공원 담 옆이 사는 집이라
일본의 각종 화초 전시회를 자주 구경하다가 일본의 난 전시회를 처음 목격하게 되어 춘란의 색에 확 빠져
버렸지요.
소위 주금색이라고 부르는 난생 처음 보는 주금화에 혼이 빠져버렸지요 노랑도 아닌 것이 빨강도 아닌 것이
주홍도 아닌 것이
크레파스로 도저히 나타낼 수 없는 난의 색을 보고 한번에 반해 버리고 말았지요.
일본에 살면서 한국을 자주 오가고 했지만 그때는 우리나라에 춘란,한란을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고 몇 년 지나니 난의 전문잡지도
창간되고 마구잡이로 중국의 난들이 수입되어 서초동에 난을 파는 마을도 생기도 한국춘란 붐이 일어나더군요.
당시 동경에서는 신주쿠 공원, 도쿄돔, 우에노 공원 , 유명 백화점 옥상 등에서 난전시회가 자주 열려 열심히
구경을 다녔는데
한국의 난 잡지사 사장, 유명한 난 상인 들이 눈에 띄기도 했던
것 같은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때 일본의 난 업계를 보고
우리나라도 모방을 시작 한 것 같아요, 난에 관한 모든 명칭이
전부 일본 것이고 난에 관한 지식은 전부 일본 것을 모방해서 지금도
그대로 인 것 같아요, 중국의 난 역사는 몇 천 년인데, 일본은 약 100년 , 한국은
나의 재배 이력 정도인 35년 쯤 되는 것 같군요.
결국 일본 난에 빠져서 애란 생활을 시작하여 일본 한란을 10여년
키우다가, 중국 난 특히 연판란에 빠져 10여년, 귀국 후 최근에는 한국의
토종난에
빠져서 인생 최후의 낙으로 삼고 세월아 네월아 하며 혼자서 즐기고 있습니다.
좌우튼 동양 3국의 난을 즐기게 되었는데 각 나라 난 업계의
공통점은 자기나라의 난에 대한 애국심이 이만 저만이 아닌 것이 똑 같은 것
같아요. 일본의 큐슈, 시코쿠등의
한란의 발생지에 사는 일본인은 일본 한란이라 말로 그 기품과 향이 세계최고라고 자랑하더니 한때 천문학적인
가격으로 거래가 되고 그 뜨겁던 시장은 지금 대부분 거품이 꺼져서 난 장사는 대부분 폭삭 망하고 일부 명맥만
유지 한다고 듣고 있습니다.
그럼 중국은 어떨 까요? 원래 중국란은 우리가 말하는 일경구화
즉 중국에서는 혜란이라고 부르는데 이 혜란의 역사가 제일 길고 꽃도 제일로
쳐 주었는데 그 후 사천성, 운남성 등 고지대에서 나오는 연판란은
오지란이라고 푸대접을 받다가 좋은 꽃들이 발견되기 시작하여 중국과 일본에
유행하게 되었으나 최근 거품이 많이 꺼진 상태지만 지금도 한 촉에 몇 억 몇 십억 등을 호가하는 거품이
낀 난들이 나오고 있습니다,
중국사람 특유의 호기라고 생각되며 최초의 난 보유가가 팔고 싶지 않다는 의미로 천문학적인 가격을 부르는
것으로 생각되어 최초가격이 정해지지만
어느 나라 사람보다 시장경제에 정통한 중국사람들이 난의 포기 수가 많아지면 결국은 가격이 급격히 떨어질
것은 틀림 없지요.
작년 운남성에 놀러 갔을 때 불과 몇 년 전 한 촉에 17억원
하던 난을 몇 만원에 산적이 있으니까요. 그러나 중국사람들은 중국 난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지요, 운남성 다리시에 사는 잘 아는 젊은 난 가게 사장은 연판란의 꽃은 세계 최고라고 자랑하면서 향기가 없는 난은
난이 아니다라고
자랑하고 있지요.
지금도 연판란을 4~50종 갖고 있는데 1월초에 개화하여 세상에서 제일 화려한 모습과 은은한 향기를 풍기는 연판란은 일품의 난이라고 생각되지요.
그럼 우리나라의 난은 어떨까요, 한란은 제주도 밖에 나오지 않고
천연기념물로 지정되어 난 유통이 되지 않아 일본 한란의 몇 십 분의 일도 안 되는
상황이지만 한국 춘란은 과히 폭발적인 대 유행을 거쳐 조금 잠잠해진 상태인 것 같네요. 몇 년 전 친한 친구가 남쪽 도시의 자동차 판매회사의
책임자로 부임해서 판촉사원들을 달달 볶아도 차는 팔리지 않고 판매사원도 보이지 않아 그 연유를 알아보니
판촉 사원들이 전부 난 캐러
산으로 갔다고 하는 웃지 못할 지경이라고 들었는데 지금은 우리나라도 거품이 좀 빠진 것 같네요.
제 생각으로는 한국 춘란의 장점도 여럿 있지만 역시 꽃의 색이라고 생각되네요. 화근이 전혀 없는 순색의 홍화,주금화,황화는 역시 세계 최고라고 생각되네요.
최근 들어 무명의 한국 토종난을 구하러 인터넷 시장을 기웃거리고 있었는데 회원 가입했다고 난생 처음 난나라
김영길사장님으로부터 회원 가입 축하
메시지도 받고 난 살 때 사기꾼도 있다고 주의하라는 전화도 받아 많이 감격 했었는데 글이라도 한자 남겨 놓으라고
해서 시작하다 보니 글 실력이 없어
지난 일들을 회상하면서 쓴 주제도 없고 볼품도 없는 마치 발색에 실패한 난의 색화 같은 글이 되고 말았네요.
서두의 왜 난을 키우냐? 는 질문에 답을 할 차례이네요. 35년전 일본 동경에서 본 그 난의 색을
직접 찾기 위해 난을 키우고 꽃 필 때까지 기다리고 실패하면
또 기다리고 거액을 지불해야 하는 소위 명화는 가격 부담이 되어 한 두 촉만 사서 대주가 될 때까지 기다리고, 꽃 난은 꽃 필 때까지 또 몇 년을 기다리고 ,
춘란의 꽃 색은 환경과 조건에 따라 판이하게 달라 기대하던 색과 많이 달라 실망하지만 또 다음해를 기다리고, 아끼던 난이 고사하여 많이 실망하지만
또 잊어버리고새로 살려고 난 가게를 기웃거리게 되고, 기다리는 것이 계속
반복 되지만 기다림의 재미가 어떤 재미 보다 좋다는 것을 자기도 모른 새 깨닫게 되었지요.
몇 년 후 어떤 꽃이 필까 궁금해
하며 무명의 난을 키우면서 기다리는 재미, 꽃이 영원히 피지도 않는 경우도 있고 실망하는 경우가 훨씬
많지만 그래도
참고 참고 기다리지 못하면 난 꽃을 볼 수가 없다는 평범한 진리를 찾는데
30여년이 걸렸네요.
아주 오래 전에 아파트 베란다에 난을 벌려놓고 물을 주고 있으니 부친께서 하시던 말씀이 “너의 사주에 물이 없어 이름에도 물가 수를 넣었는데 물과 가까운
화초 키우는 취미는 아주 좋은 것이다” 라고 칭찬 하면서 어느
날 시골의 친구가 키우던 춘란 몇 촉을 얻어 왔다고 건네던 아버지가 불현듯 생각이 나네요.
나도 자식이 난을 키우고 싶다는 마음이 들면 옛날 아버지가 하셨던 것처럼 칭찬을 해주고 비법도 알려 주고
싶지만 아무도 거들떠 보지 않아 섭섭하네요.
흔한 난우회에 가입한적도 없고, 자랑하려고 전시회에 출품을 한적도
없고, 남에게 자랑하려고 난을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난 장사를
하려고 키우는 것도 아니고
내 스스로를 만족하기 위하여 시간과 열정을 부어 그 환상의 색을 찾다 보니 세월이 흐르고 이제서야 기다리는
재미를 느끼게 되었지요.
내가 찾던 그 환상의 색을 찾지 못해도, 봄에 꽃이 피면 그냥
좋고, 늦여름에 꽃대가 올라 와도 좋고, 꽃 봉오리에 색이
살짝 비춰도 좋고, 봄에 새 싻이 나도
좋고, 말라서 비틀어진 난이 어느새 튼튼한 모습으로 변해 있는 것을 보면 또 좋고, 다 죽었다고 포기했던 난이 생생하게 살아나 옛날 모습으로 되돌아
오면 더 좋고,
어쨌든 30여년간 난을 키우며 즐겼던 것은 내 인생 최고의 낙으로
생각되고 난을 모르는 사람의 어떤 고귀한 취미보다 전혀 못 할게 없다고 생각 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