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난 가게 사장님.
난이 처음 유행했을 때 아주 오래 전 옛날을 회상하면 마음이 땡기고 마치 옛날 영화를 보는 듯하다.
그때는 젊었고 난을 좋아했기에 회사 근무를 마치면 쉬고 싶었지만 시간이 나면 동네의 난 가게를 기웃거렸다.
지금처럼 명품이 개발 된 것도 아니고 꽃 사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대부분 야생 춘란을 자기 눈으로 보고
장래의 가능성을 판단하여 장님이 코끼리 만지듯 난을 구하던 시절이었다.
배골에 흰 선이 있거나 서반이면 홍화가 필 공산이 크다, 떡잎에
호가 있으니 몇 년 후 언젠가 중투로 될 것이다 등등
주의 사람들의 말만 믿고 무명의 난을 사면 훗날 대부분 돈만 버리고 허탕만 치는 결과가 되었다.
그래도 일주일에 한번 경매가 있는 날은 용돈을 준비해서 중투 퇴촉이라도 한 촉 구해볼까 하고 만사 제쳐놓고
동네 난 가게 경매에 참석해 보았지만 빈약한 주머니 사정과 많은 경쟁자 때문에 번번히 허탕이었다.
요즘 호와 중투는 인기가 별로이지만 그 당시에는 별 것도 아닌 것이 기백만원을 호가해 그림의 떡인 것이었다.
지금은 편리하게도 인터넷이란 새로운 시장이 개발되어 발 품을 팔지 않아도 간단히 클릭 몇 번으로 난을 구경하고
생면 부지의 사람으로부터 난을 사고 팔기도 하는 세상이 되었지만 옛날에는 그래도 난을 사고 팔 때는 난
가게 사장과
흥정도 하고 인정이라는 것이 있었고 설레임도 있었고 눈치가 있어야 좋은 난을 구했다
산채를 다녀 좋은 난을 구했다는 기사는 난 잡지 등에서 보았지만 바쁜 직장 생활하는 사회 초년생으로는 언감생심
산채는 어려운 일이었고 적은 용돈을 모아서 동네 가게에 가서 직접 사는 수 밖에 없었다.
난 가게 사장이 그 당시 그렇게 좋아 보이고 부러웠는지 모르겠다, 부러운
취미와 직업이 같으므로 즐기면서 돈을 버니 정말 행복해 보였다.
세월이 흘러 직장 때문에 오랫동안 외국 생활을 하다가 귀국해 보니 동네의 난 가게가 있던 장소는 번화가가
되었고
그 가게는 한적한 교외의 산 밑으로 이사를 갔으나 상호도 그대로고 사장도 아직도 옛날 그 사람이었는데 그
동안 많이 늙어 있었고
어딘가 아프고 불편한 것처럼 보였고 진열된 난도 별로 없고 난 가게 안이 매우 썰렁하였다.
한국사람은 서너 다리만 건너면 전부 아는 사람이라더니 옛날에 난 장사를 크게 하다가 지금은 그만 두고 같은
동네에서 조그만 꽃집을 하는
김 아무개를 아느냐고 물으니 잘 안다고 하면서 그 난 가게 사장은 30여
년전 얘기를 하고 그때가 참 좋았고 회상에 잠기는 듯 하였다.
오래된 내 기억에는 그 가게 사장의 한자 글씨가 달필이라서 어릴 때 서당에 다녔는지 한자를 참 잘 쓰는
아저씨구나 라는 편린이 남아 있었다.
그 후 몇 차례 난 가게를 방문 해보니 난 가게 사장이 심장병으로 고생을 많이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고
공교롭게 나도 오래 전부터 같은 심장병으로 고생해온 터라 동병상린을 느껴 집에 있던 오래된 녹각 영지 버섯
한 통을
드리고 잘 다려 잡수시고 몸을 잘 보살피라고 당부하면서 난 살 일이 생기면 그 가게를 방문하곤 했다.
가끔 희귀한 난을 인터넷에서 보면 혹시나 하면서 사장한테 구해 달라고 하면 귀신 같이 구해주지만 얼마에
어디서 구했다고 얘기하면서
얼마를 달라고 얘기를 하지 않아 항상 수고비를 별도로 쳐서 드렸다. 사장이
너무 정직해서 한편으로는 저렇게 살아서
돈을 벌겠는가 하는 생각도 들었지만 어쨋든 내가 구하려면 몹시 어려운데 간단히 구해주니 그 사장한테 고맙기도
하지만
그
가게는 지금 경제적으로 매우 어렵고 그 사장의 건강이 좋지 않은 것 같아 괜히 미안한 생각이 들기도 하였다.
1월 초가 되면 사무실에 난 꽃이 많이 피는데 그 사장이 금년은
꼭 난 꽃 보러 놀러 온다고 얘기했지만 결국 오지 않았다.
최근 안부 전화를 해도 받지를 않으니 또 무슨 변고가 있었나 싶었지만 그 쪽에서 연락이 오지 않으면 도무지
알 길이 없었다.
며칠 전 전화로 본인의 심장 수술과 부인의 갑작스런 암 수술 등으로 큰 병원에 입원 중이라고 하면서 우환이
겹쳐서 경제적으로
상당히 어렵다고 했고 병원비가 모자라 별로 친한 사이도 아닌데 나한테 어렵게 어렵게 병원비 이야기를 하는
게 아닌가.
금전 거래는 잘못되면 돈도 잃고 사람도 잃는 경우를 여러 번 보아온 터라 아주 친한 사이도 아닌데 금전으로
도와줄 수도 없지만
하도
사정이 딱해서 그대로 무시하고 모른 척하고 지나갈 수도 없었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내가 가지고 있는 대주가 된 희귀난이 여러 종 있어 그 사장은 난 판매가 주업이니 조금씩
분촉해 주면
쉽게 현금화 하여 돈을 만들 수 있다는 생각이 드니 자존심도 세워주고 처음으로 난을 키워 좋은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평소 난을 키워 장사 하려고 생각한 적도 없고 난을 파는 방법도 몰랐고 오로지 좋은 난이 나오면 끊임없이
살 생각만 했다.
희귀한 난 들도 처음엔 한 두 촉 짜리였고 고가로 구입해서 여러 해를 기다려 꽃을 몇 번 보니 저절로 포기수가
늘어나 대주가 되었고
이른 봄만 되면 황홀한 꽃과 은은한 향기에 취해 세상에 이런 재미가 있어 사람들이 난을 키우구나 라고 생각하였다.
희귀난에 좀 고액을 투자하긴 했지만 그 동안 즐긴 것 만으로 이미 투자한 금액의 가치는 충분히 뽑았다고
생각했다.
아주 귀한 꽃도 보았고 쉽게 만날 수 없는 향기를 몇 년이나 맡아 기억 속에 그 향기까지 남아 있으니 좀
쪼개준들 아무 미련이 없다.
그리고 대주가 되니 난을 아끼는 마음이 처음 구입했을 때 보다 많이 옅어진 것이 사실이다.
처음 희귀난을 구입했을 때 혹시 고사 하지 않을 까 항상 노심초사 하였고 새 촉이 나기 전 구 촉의 잎이
시들어 가면 안타깝기도 했고
다른 쪽 난 보다 더 많이 신경을 썻는데 세월이 흘러 대주가 되고 나니 이제 죽을 염려도 없고 해가 바뀌면
또 예쁜 꽃이 피겠지 간단히
생각하지만 첫 꽃을 보았을 때의 그 황홀했던 감정은 없어진 것은 사실이다.
내가 뭘 바라고 그 난 가게 사장을 도와드리는 것도 아니고 그렇게 친한 사이도 아니고 단지 오래된 인연으로
인해 측은한 생각이 들어
마음이 동한 것이니 기꺼히 도와드려야 한다고 믿었고 난 때문에 우연히 나한테 좋은 일 할 기회가 온 것
같기도 했다.
아무리 희귀한 난도 대주가 되니 혼자만 갖고 있을 필요도 없고 분주를 해서 팔자니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고
좋은 일 하는 사람 혹은
난을
좀 아는 지인한테 좀 나눠주어도 되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있는 참에 난 가게 사장한테서 전화가 온 것이다.
제일 희귀한 난을 5 종류 정도 골라 조심스럽게 분리하면서 좋은
새 주인을 만나서 예쁜 꽃을 피우고 향기를 뿌리라고 마음속으로 당부하고
또 어려움에 처해있는 정직한 그 사장에게 이 난으로 인해 경제적으로 조그만 도움이 되고 난 가게 사장과
부인의 조속한 쾌유를 빌었다.
난을 업으로 하는 사람들은 이 글을 읽으면 한국의 난 역사 같은 그 난 가게 사장이 누구인지 거의 알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데
여유가
있으신 분들은 조금 도와 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이 글을 자유글터에 올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