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제의 산반녹호와 중국 강서한란 중투)
첫번째 이야기.
난초에 얽힌 두 개의 에피소드~비애
난초에 대한 열기가 예전 같지 않게 뜨막할 무렵
가까운 동네 가두리장에서 난초를 경매한다는 입소문을 듣고 배양하는 난초를 처분할 요량으로 몇 분 싸들고 찾아갔었다.
가두리장에는 이미 20여 명의 애란인들이 경매시간을 기다리며 주변에서 서성이고 있었는데,
경매장 주인이 시키는 말대로 싸들고 간 몇 분의 난초들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최대한 값이 싸야 팔린다는 소리를 듣고
다소 겁을 먹은 나는 경매가격을 저렴하게 써붙였다.
그런데 경매가격을 써붙이자 마자 어느 애란인 한 사람이 가까이 다가오더니 들고 간 난초 중에 중투 원류, 명명품 천사와
진홍 등 4개의 화분을 뒤로 미루고 그 중에 하나를 찍었다.
그가 사겠다고 찍은 난초는 30만원 경매가격이 붙은 녹색과 황금색의 색대비가 환상적인 5촉짜리 금계산반이라는 이름의 무명품이었다.
실상 나는 명명품들 중에서 어느 것이 팔리길 은근히 기대하고 있던 참이어서 기분이 좋았다. 하지만 나의 손을 떠난 것은
오로지 그 녀석 하나라는 사실이 한편으로는 다소 놀랐다. 하도 신기한 일이기에 나중에 집에 돌아와 직거래싸이트를 검색하여
녀석의 존재에 대해 추적을 해본 결과 나는 다시금 기암을 하고 놀랐다.
녀석과 제대로 비슷하게 닮은 금계산반 가격이 촉당 1백만원이었으며 5촉이면 5백 만원을 너끈이 받을 수 있었을 터인데
어처구니없게도 나는 현금에 눈이 어두워 그만 개값에 불과한 헐값에 녀석을 팔아넘긴 거였다.
요즈음 제대로 생긴 금계산반 가격이 중투 이상 천정부지에다 대세라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던 어리석음 탓이엇다.
나는 소위 난초거래 시장 돌아가는 상황을 전혀 모르는 문외한이었다면 경매자는 빠꼼이 상인이었던 것이다.
고흥 산에서 산채하다가 5년씩이나 좋다는 영양제는 다 거둬먹이고 어디가 아플세라 노심초사 살균제와 살충제로 방역을
해주고 그동안 배양한 물값이나 겨우 건졌을까 한 허름한 가격에 팔아치우다니 후회막급이었다.
하지만 풀떼기 하나에 30만원이면 하늘에서 공짜로 떨어지는 것도 아닌데 그것도 큰 값이 아닌가?
나는 쓰라린 가슴을 쓸어내리며 스스로를 위로했다.
난초가 인연초라는 말이 실감되었다.
녀석의 주인은 내가 아니라 바로 경매자였다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으로 위안을 삼았다.
바뀐 주인한테 가서나 건강하게 잘 자라주기를 빌었다.
언제까지 그 걱정을 하다가 병에라도 걸리면 더 큰 화근이 아닌가.
두번째 이야기
난초에 얽힌 에피소드~ 희열
이번엔 우리의 자생춘란이 아니라 중국 강서지방에서 산채한 한란인데 기분이 뱃속까지 찢어지는 에피소드다.
오래 전에 뿌리가 부실하게 한 가닥 밖에 없고, 그것도 철사 줄에 묶여서 목숨이 겨우 간당간당 불안하게 붙어
곧 무너질 듯하던 한 촉짜리 중국한란을 구입해 배양했다.
아파트가 동향이라는 난초 기르기에 좋은 조건이어서 그런지 위태하던 녀석은 매년 한 쪽씩 올려주더니
5년이 지나자 올해까지 어느덧 5촉으로 식구를 늘렸다.
지난번에 만났을 때 나한테 분양한 먼저 주인은 이 녀석을 다시 되사겠노라고 말했다.
국내에서 유일하게 소장하고 있던 주인이 나한테 분양한 뒤 자신이 기르던 개체는 죽었다고 하니
아마도 이것이 유일할 것이라고 하면서.
주인의 부탁이 워낙 간곡해서 이상히 여긴 나머지 여기저기 난초직거래장 싸이트를 통해 검색을 해보았다.
그러다가 일자리를 찾아와 제주도 식물원에서 근무한다는 어느 화교 남자가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이 눈에 띄었는데
대략 비슷하게 닮은 중국한란 중투를 배양하다가 죽였다는 내용이었다.
목숨이 거의 경각에 달렸던 녀석을 죽음으로부터 살려낸 정성스러운 보살핌과 가슴을 조마조마하게 만든 설렘,
그리고 건강한 난초로 길러냈다는 뿌듯한 성취감 등등의 아픈 기억을 더듬으면서 얼른 대답하지 못했다.
개성 없이 모두가 붕어빵 찍어내듯 하는 세상에 난초 하나만이라도 나만이 유일하게 귀한 꿈의 난초를 소장하고 있다는 사실에
공연히 어께가 으쓱해지곤 했다.
난초 따위에 어깨가 으쓱해진다는 말은 애란인들한테만 통하는 이야기일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반려식물에 대한 즐거움일 것이다.
애란생활을 하다보니 웃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다.
모 직거래 사이트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인데인, 이 녀석과 똑같은 품종 1 촉짜리 가격이 150만 원이라는 명찰을 달고 있었다.
난초 값이 고가여서 놀라기는 했지만, 제주한란 중투 가격도 비교적 높은 편인 것을 감안할 때
중국 강서한란의 "중압 중투"가 그만큼 희소성을 갖고 있다는 뜻일 것이라 수긍했다.
난초를 돈으로 알고 있는 난초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무분별한 산채꾼 때문에 오늘도 아름다운 우리의 강산은 황폐화가 되고 있다.
난초든 뭐든 곁에 두고 즐거워하면 그만이지 무조건 비싼 것이 좋은 것이라는 허영심에 동의하고픈 마음은 추호에도 없다.
이 녀석의 원산지를 검색해보니 중국 강서 지방 복건성의 무이산은 주자(朱子)가 주자학을 완성했다는
중국 10대 명산 중 소문난 명산이라고 한다. 명산에서 명란이 난다는속설이 맞을까
무이산은 무이암 차가 유명하며 우롱차의 발원지이기도 하다.
원래 이 녀석을 소장하고 있던 주인은 가끔 산채도 함께 다니는 난초 고수인데,
그의 말에 따르면 오래 전에 중국으로 난초여행을 갔다가 산채꾼으로부터 생강근을 직접 구입했다면서
꽃대가 1미터나 높게 자라며 색설이 핀다고 나더러 소중하게 잘 키워보라고 말하기도 했다.
이 녀석을 주인한테 돌려주고 싶은 마음이 추호도 없고, 지금으로서는 누가 150만원을 받고 팔라해도
그러고 싶은 마음은 조금도 없다.
현재 이 품종이 중국 본토에도 씨가 말랐다고 하니 중국을 다주고 바꾸자고 해도 얼른 내놓고 싶지는 않다.
그러구러 차일피일 지내다가 어떻게 알았는지 어느 날인가 제주에 있던 화교 사내한테서 연락이 왔다.
대만에서 난초 거상으로 제법 알려진 업자가 거액의 난초값을 주고 이 한란중투 녀석을 사가겠노라고 연락이 왔단다.
거액을 들여서라도 저희나라 중국의 식물 국보와도 같은 자존심을 한국에서 되찾아가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지금 고민 중이다.
중국을 통째로 내놓든지 아니면 아파트 한 채 값이라도 선뜻 내놓는다면 몰라도 호락호락하게 굴지는 않겠노라고 다짐한다.
하하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