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은 잎을 감상하는 葉藝品과 꽃을 감상하는 花藝品으로 나뉘어 지는데 엽예품의 경우 대개가 무늬로 구분되고 있습니다. 모촉에서는 아무런 특성을 보이지 않다가 신아에서 무늬가 드는 것이 나오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숨어있던 인자가 나타나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대개의 경우 난의 세력이 약할 때는 보이지 않다가 촉수가 늘어나고 세력이 강해지면 감추어져 있던 인자가 발현하여 화려한 무늬가 나타나는 경우가 많습니다.
동양 삼국 중에서도 한국춘란이 유난히 이러한 변화의 특성이 강하고 발전도 빠르다고 합니다. 흔한 경우는 아니지만 무지(무늬 없는 보통 녹색 잎)에서 갑자기 잎의 한 가운데에 화려한 진노랑색의 무늬가 나오는가 하면 다음 신아에서는 잎 전체가 녹색이 전혀 없이 노란 무늬의 유령으로 변하여 고사하는 일까지 있다고 합니다. 노란 무늬는 엽록소가 분해되고 카로티노이드계 색소가 두드러지게 나타나는 현상이지요.
또, 무늬란에 질소 비료를 과다하게 주거나 혹은 세력을 잃어서 신아가 무지가 되어 나오는 경우도 있습니다. 세력을 잃은 난에서 무지가 나오는 이유를 그럴듯하게 설명하는 말이 있습니다. 본래 녹색은 탄소동화작용을 하는 엽록소를 다량 포함하고 있는 부분인데 세력을 잃은 난이 생존하기 위한 자연적인 방어 작용으로 녹색의 잎을 띠게 된다는 것이지요.
옷이 날개라지만 굶어서야 되겠습니까? 한번 무지가 나오게 되면 계속해서 무지가 나올 확률이 높아 봄이나 가을에 떼어 내어 따로 심는데 이 무지에서 신아가 다시 무늬가 들어 나오는 경우도 꽤 많습니다. 세력이 너무 약한 것은 떼지 말고 그냥 두는 것이 좋습니다.
또 세력과 관계없이 종자 자체가 신아에서는 화려한 무늬가 보이다가 자라면서 소멸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급소멸되거나 천천히 소멸되거나 하는데 자세히 보면 어딘가에 희미하게라도 흔적을 남기는 것이 보통입니다. 이 경우는 엽예품이라기 보다는 차라리 색화의 꽃을 기대해 볼 만 하지요. 그래서 산에서 막 캐온 허술하게 보이는 난도 세심히 들여다 볼 필요가 있습니다.
종로 5가에 나가보면 길거리에 한국춘란을 파는 노점상들이 많은데 그 앞에 옹기종기 둘러 앉은 사람들이 난을 한 손에 높이 들고 햇빛에 비추어보는 장면을 쉽게 볼 수 있을 것입니다. 바로 이 잠재 인자를 살피거나 소멸되고 남은 흔적을 살펴 보려는 동작이지요. 특히 신아에는 이러한 고유한 특성이 나타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신아가 나오는 5~6월이 기다려지고 신아에 거는 기대와 즐거움이 더하는 것 같습니다.
또, 신아에서는 전혀 무늬가 안 보이다가 신아가 자라면서 노란빛의 무늬가 들어가는 개체도 있습니다. 이들은 햇볕을 받아야 무늬가 발현되는 품종입니다. 이러한 종자의 대표적인 것은 虎皮斑인데 노란색이 뚜렷하여 잎의 녹색과 경계를 분명히 하는 것으로 귀한 엽예품으로 치지요.
이 호피반도 그늘에서만 자란 것은 신아에서나 모촉에서나 노란 빛이 거의 발현되지 않지요. 호피반은 키우는 사람이 만들어내는 것이라는 말이 맞는 것 같습니다. 이렇게 인위적으로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무늬를 발현시키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러한 다양성 또한 자생란이 주는 매력이지요.
산에서 막 캐온 상태의 초라하고 보잘 것 없는 형체, 토끼나 산짐승에게 잘라 먹힌 잎, 밟히고 구겨지고 또는 병들어 누렇게 보이거나 얼룩지고 시들시들해 보이는 난에서 자기 나름대로의 인자를 발견하고 이듬해 신아에서 기대했던 무늬가 터져 나올 때의 기쁨! 이것이 자생란을 기르는 사람 만이 느끼는 남모르는 쾌감이기도 하지요. 이런 것을 몇 년 배양하면 눈부시게 아름다운 명품으로 발전하는 것도 나오게 되는 것입니다. (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