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난초에 물을 주고 있자니
사람들이 오가며 한마디씩 입을 뗀다
자고로 난초는 물주기만 잘해도 답이 달린다며
어떤 이는 길고 좁다란 주둥이가 달린 주전자를
들고서 졸졸졸 주라하고
또 어떤 이는 제사상 술잔 돌리듯 공손이 원을 그리며
쪼로록 주라하고
또 다른 이는 한여름 소낙비처럼 쫘아악 퍼부어 주라하고.
나 이거야 원.
2.
답답한 마음에 허선생에게 물어보니
운전과 난초는 마누라에게 가르쳐 주는 게 아니란다. 췟.
하는 수 있나. 급한 놈이 우물 판다고 요즘 핫하다는 <책>을 들고 파기 시작했다.
모든 만물이 그러하듯 책도 영물이라 서로 간의 궁합을 봐야한다
글은 사람을 깨우고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기에 섣불리 혼을 주었다간 말 그대로 혼줄이 나기 십상이다
그로인해 나는 항상 책과 첫선을 볼 땐 저자를 꼼꼼히 살핀다. 사람을 보면 글이 보인다.
더군다나 문학이 아닌 정보에 대한 글일수록 더욱이 그렇다. 이건 신뢰의 문제다.
책장을 열어 이 저자에 대해 샅샅이 훑는다.
어쩌면 이즈음에서 저자는 <누가 나를 훔쳐보는 불길한 예감>에 몸을 떨어댈지도 모를 일이다.
*숨어있는 한국의 난 역사를 찾아서(최병로)
고려시대부터 근현대까지의 한국 난역사를 기록한 역사책
특히나 지물포 생업을 운영하는 탐독가인 저자가 시대를 거슬러
난의 대가인 가람 이병기 선생의 자취를 따라 기록한 기행문이기도 하다.
난초를 대함에 옷깃을 여미고 예를 다하는 선인들의 모습에서
현재 지각변동을 겪고 있는 난세亂世에 일희일비하는 내 모습을 되돌아보게 한다
-멋이 있는 곳에 <생활>이 있고 멋이 없는 곳엔 <생존>이 있다
-정성들여 기른 난에서 꽃이 피면 친지와 벗들을 초청하여 난향을 즐겼고,
또한 그들이 기른 화초가 만개하면 술병을 차고 꽃구경을 가기도 한 것이다
*실전 춘란배양(권오경)
정답은 없으나 기본은 있다(이 발간사에서 벌써 나는 백기를 들었다)
가히 춘란의 체계적인 배양이론 정리와 올바른 난문화 정립의 <기본서>라 할만하다.
또한 삿된 말로 사람을 현혹하지도 현학적인 언어로 자신을 뽐내지도 않는다.
-식물로서 춘란의 기본생리와 춘란이 요구하는 환경과 섭생을 정확히 알기보다
난의 성장을 바라보는 우리의 머릿속이 오직 일생일란이나 난 재테크의 열망으로
무장되어 있다면 사상누각으로 위험천만이다
-만약 생육 과정의 기본을 등외시하고 타 식물을 키워본 경험과 이웃집 선배들의 무용담에 귀 기울이며
난을 키워보려 한다면 꼿꼿한 춘란은 지조가 있는 선비처럼 버거운 상대가 될 것이다
*이외에도 시중에는 전에 없이 춘란에 대한 많은 서적과 밴드, 유투브 등 다양한 매체가 등장하고 있어 여간 반갑지 않다.
한국춘란가이드북-입문,전문가편(이대건)
월간 난과 생활, 인터넷신문 난과 함께, 밴드 희노애란 난우회, 유투브 춘란TV
3.
뭐야. 물을 그렇게 성의 없이 주면 어떻해!
허선생의 물주는 꼴을 보고 있자니 <이제 뭘 좀 아는> 내가 어째 부아가 치밀어 오른다.
그랬더니, 조용히 수도꼭지를 잠그고 담배를 집어들고 문을 열고 나가며 허선생 왈,
- 버려. 알고 버리는 거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