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이 따러 가지 않을래?
내가 남편을 꼬드길때 쓰는 몇 년에 한번 쓸까말까한 말투다.
차례도 지냈겠다, 성묘 까지 다녀왔겠다, 인사드릴 친척도 없겠다
송이 쏜다 친정에 큰소리도 쳐놨겠다
코맹맹이 소리에 저도 놀랐는지 남편은 주섬주섬 시동을 걸었다
한 시간 남짓을 갔을까.
철은 철인데 비가 제때 안와서 어떨런지 모르겠네.
송이는 말이야, 저기 저 바위 산 보이지?, 저 소나무 숲 부엽 밑에 많아.
부엽이 인간의 태반처럼 습과 영양을 제공해 주거든.
남편이 어깨에 잔뜩 힘을 주며 말했다.
그리고는 고수의 고수들만이 안다는 그 은밀한 송이 밭을 향해
겅중겅중 전진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런 남편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나는 그만 피식 웃음이 나왔다.
그도 그럴 것이 남편은 네비를 켜고도 친구는 물론 제 가족의 집도 못 찾고 헤매는
그야말로 모태길치였다(차로 꼴랑 50분 거리의 창원야구장을 3시간 만에 주파하는 진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오직 저 길치 하나만 믿고 이 거친 정글 속을 가야한다고 생각하니 순간 앞이 깜깜했지만,
그 옛날 야생 수컷의 유전자가 저 남자에게도 오롯이 심어져 있겠거니 믿어 볼밖에.
숨이 벅차오르고 심장이 벌떡댈 때 즈음 걷는 발걸음마다 앙징맞은 송이들이 하나 둘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마트 진열대가 아닌 숲 속에서 산채로 서 있는 송이라니. 그런데 이거이 내가 찾는 송이가 맞긴 한가.
그래서 급히, 폰으로 찍어 밴드에 올려 물어보니. 밴친들이 한목소리로 ‘묵으면 죽어요’ 했다.
그렇게 ‘묵으면 죽어요 송이’만 주구장창 보고 죽을똥 살똥 정상에 오르니 남편 왈,
아휴, 없다없어. 아직 이른가봐. 부엽들이 그대로인 걸 보면 사람들 손을 탄 것 같진 않고.
흠. 적어도 담 주나 돼야 될 것 같은 데. 그때는 새벽에 오든가. 아니면.
아니면? 내가 물었다.
텐트를 치던가. 수컷이 배시시 웃었다.
그러고는,
송이는 날마다 새록새록 나거든. 그러니까 그날그날 제일 먼저 보고 따는 사람이 임자지.
초자라 아직 아무 것도 모르시나 본 데, 송이 철이면 꼭두새벽부터 여긴 전쟁터이야. 여기가 바로 격전지고.
남편은 입이 마른 지 배낭에 넣어 온 맥주 캔을 따서 벌컥벌컥 마시고는 소매로 입술을 닦으며 말했다.
그러니까 풍문으로 들은 이야기는 이래.
바람 끝에 찬 기운이 돌기 시작하면 산 좀 탄다하는 사람들은 너나할 것 없이
온통 송이 생각에 비가 오면 온다고, 안오면 안온다고 타령들을 늘어놓지.
그런 귀한 송이가 풍년이던 어느 해. 김 사장이 송이를 매일 그득그득 따오는 것을 같은 난실 추 사장이 보고는,
도대체 비법이 뭐냐 물었더니 김 사장이 ‘영업 비밀’이라며 끝까지 안 가르쳐 주더란다.
약이 오른 추사장이 몰래 김 사장 뒤를 밟았더니, 아니나 다를 까 새벽 3시에 길을 나서더라는 거야.
그걸 본 추사장이 어떻했게? 하하. 그래, 새벽 2시에 일어나 산으로 갔다는 거 아냐.
하지만 산기슭에 차를 대고 막 숲을 향해 가려는 데 번쩍번쩍 한 무리의 빛이 산발적으로 움직이며
추사장을 향해 서서히 내려오더라는 거야.
저게 뭐지 하며 눈을 비비적거리며 자세히 보니, 해드랜턴을 두른 백발의 할머니들이
삼삼오오 짝을 지으며 걸어 나오더래. 당신들보다 큰 자루를 질질 끌면서 말이야.
아무튼 그렇게 서로 눈이 마주 쳤는데, 글쎄나 할머니들이 뭐랬게?
짖궃게도 송이 그득한 자루를 열어 보이고는 < 달빛이 쥑인다네 >.
하하, 그래 텐트 족, 그 마을 할머니들 대항마인 셈이지.
그 살벌한 할머니에 달빛까지 듣고 나니 나는 그만 맥이 빠졌다.
쳇. 그깟 송이가 무에라고. 털썩 주저앉아 앓는 소릴 냈다.
그런데, 그런데 말이다 남편이 어째 이상하다.
캔에 주둥이를 갖다 대다가 멈칫. 눈이 점점 커지더니 소리쳤다.
동작 그만. 아줌마. 그대로 있어.
그리곤 지뢰를 제거하듯 내 엉덩이를 밀쳐내더니 어이없다는 듯 말했다,
어이쿠야, 송이! 이게 바로 송이야!
그렇게 첫 송이를 따내고 감격한 우리는 심기일전하며 허기도 잊은 채 이 잡듯 온 산을 헤집고 다녔다.
하지만 남편이 본인만 알고 정말 아무도 모른다는 송이 밭을 가고 또 가봤지만
뭋 사람들과 묵으면 죽어요 송이만 드글댔다.
남편은 그럴 때마다 ‘누가 내 뒤를 또 밟았군 밟았어’ 하며 하나마나한 소릴 해 댔다.
해는 뉘엿 넘어가고 발이 엇박을 내고 뱃가죽이 등에 붙을 때쯤 우리는 산을 내려갔다.
남편은 미안한지 자꾸자꾸 말했다. 밤을 주워다 무른 이빨로 긁어대면서도 말하고,
지팡이로 나무를 툭툭 쳐대면서도 말하고 미끄런 비탈길에 다정히 손을 내밀면서도 말했다.
이렇게 말이다. < 아무래도 이 산이 아닌가봐 >
덧붙임. 그날로 나는 드러누움. 아~그놈의 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