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이 피는 그 날 까지.
30년 전에 우연히 구입한 춘란이 한 분 있다.
구입 당시 3촉이었는데 놀랍게도 지금도 3촉이다.
강산이 세 번을 바꿨는데 아직도 촉수가 그대로인 것은
보통 이상의 고집 불통인 난이 아닐까 싶다.
긴 세월 동안 환경에 적응을 못하여 죽었든지
아니면 멋진 꽃을 피워 재배자의 노고에 보답을 했을 터인데
아직도 그대로인 것은 범상한 난임에 틀림없다.
처음 몇 년은 이 난을 의식하지 못했는데 어느 해인가 자세히 관찰해 보니
이른봄 제일 먼저 화려한 신아를 올리더니 금방 구 촉이 고사해 버리니
한 촉이 나고 한 촉이 죽으니 항상 본전인 셈이다.
물을 제때 안준 것도 아니고 비료를 안준 것도 아닌데 잎이 3년이상을
견디지 못하니 잎의 수명이 3년 밖에 안 되는 난일까 싶다.
오래 세월 동안 촉수는 변하지 않았지만 처음 구입 당시 여리고 애리애리한
잎은 건장하고 튼튼한 잎새로 하늘을 찌를 듯 위세를 보이고 뿌리는 열대지방의
맹글로브 뿌리처럼 가지에 가지를 친 듯 울창하니 변하지 않은 것은 아니다.
처음 심을 때 3호분으로 이었는데 6호분도 부족하여 지금은 일반 화분에 심을 수
밖에 없을 정도 큰 난초가 되었는데 도무지 꽃을 피우지 않는다.
한여름 2주일 동안 물을 안주고 굶겨 보기도 했고 한겨울
추운 베란다에 내놓기도
했으나 고집 불통으로 여전히 이 난은 꽃을 피우지 않는다.
이 난은 나하고는 인연이 없는 난인가! 버리든지 다른 사람에게 주려고 하다가
오기가 발동해서 꽃이 피는 그날까지 기다리기로 했다.
그러나 메인 난대에서 끌어내려, 잡초처럼 키우는 일반 화분
속으로 옮겼는데
물을 주는 듯 마는 듯 해도 여전히 건강하게 잘 자라기만 하네.
긴 세월에도 꽃을 피우지 않으니 불임의 난인가 아니면 숫놈의 난인가!
고집 불통의 난 언제 그 잘난 꽃을 한번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