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주쓴풀(당약:唐藥) 이야기
무릎까지 자란 잡초들이
기우는 여름 따라
풀썩 자지러지는 비탈
따가운 햇살이 심드렁하다
척박한 자갈길 따라 빼꼼히
작은 봉오리 키워 올린 자주색 별바라기
부풀어 터질 듯 한 작은 품속에
향내 가득한 서정(抒情)을 보듬고 있나니
바람결에 기대어 졸던 잎사귀 위로
표범나비 한 마리가 날아와
함부로 일침을 놓았다
화들짝 터져버린 꽃봉오리
느릿한 해가 머뭇거리다 슬쩍
오목한 품속으로 손을 넣어 본다
파르르 내뿜는 수줍은 향기
따가운 햇살을 가슴 가득 품고
이리저리 뒹굴려 보는
타는 듯 이글대던 태양의 열기와 장마철 잦은 비로 인한
무덥고 습한 여름이 지나고 아침저녁으로 서늘한 바람이 불어오는
가을이 시작되면 산비탈 자락엔 노랗고 하얀 꽃들이 피어나기 시작한다.
여름에 피는 꽃들이 짙은 녹음으로 인하여 본능적으로 빛을 더 받기 위하여
위로 높이 키를 키우거나 덩굴로 뻗어 오르는 꽃들이 대부분인데 비하여
가을에 피는 꽃들은 그렇게 큰 키와 덩굴로 오르는 꽃들은 별로 없다.
대신에 자잘한 줄기에 많은 꽃송이를 달거나 짙은 색감의 꽃을 피운다.
그것은 아마도 장마철 우기가 지나고 건조하고 척박한 환경이 유지되기 때문에
이에 적응하기 위하여 수분의 소모를 최소화 하고 간혹 급 저온으로 하강하는
냉기에 적응하기 위하여 지열에 가깝게 피워 내려고 진화한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런 이유로 가을꽃들은 꽃 색도 더 진할뿐더러 향기 또한 아주 강렬한
향을 뿜어내는 꽃들이 대부분이다.
거기에 더하여 약재로 이용되는 약초들 또한 봄이나 여름에 채취하는 약초들 보다
약성이 훨씬 더 뛰어 나리란 것은 미루어 짐작 할 수 있는 일이다.
이렇게 가을 어귀에서 기울어 가는 빛을 받으며 자라는 약초들 중에서
유독 척박한 산비탈에서 강렬하고 짙은 색채와 더불어 독특한 아름다움으로
우리에게 커다란 도움을 주는 약초가 있으니 그 주인공이 바로 자주쓴풀이다.
자주쓴풀은 용담과의 두해살이 풀이다.
전국 각지의 산과 들에 자라지만 필자의 산행 경험으로 비추어 볼 때
내륙 지방의 척박한 돌산의 양지쪽에 더 많이 잘 자라고 있던 것으로 기억된다.
자주쓴풀은 여름과 가을에 채집하여 그늘에서 말려 약으로 이용하며
당연히 병에 잘 듣는 약초라 하여 당약(唐藥) 이라는 약명으로 불리운다.
자주쓴풀은 꽃부리가 푸른 자주색을 띠고 있지만 같은 종의 쓴풀중에
꽃의 상반부에 짙은 녹색의 반점이 깔리고 잎 장수가 네 개 인 네귀쓴풀도
같은 약으로 이용하며 꽃부리가 백색을 띤 “선린초”라는 것도 같은 약으로 이용한다.
자주쓴풀의 어원은 자주색의 매우 쓴맛이 나는 풀이란 뜻으로 붙여진 이름이며
생선의 쓸개처럼 쓰다고 해서 “어담초”라는 이름으로도 불리운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이 쓴풀의 뿌리를 한번 씹으면 그 쓴맛이 얼마나 강한지
머리를 천번을 흔들어야 한다는 뜻으로 “천진”이라고도 한다.
실제로 필자도 산행을 하면서 약초라 하면 무엇이든지 입으로 가져가는
버릇 아닌 버릇이 있어서 이 쓴풀의 뿌리를 한번 씹어본 적이 있는데
그 쓴맛의 여운이 얼마나 강한지 물 한 병을 다 마시고도 산 아래로 내려와서
식당에 앉아 밥을 먹을 때 까지도 입에서 쓴 냄새가
올라 오는듯 한 역겨움을 느낀 적이 있었다.
말 그대로 고개를 천번을 흔들어야 한다는 어원이 이해가 가는 대목이다.
한편 자주쓴풀은 건위작용이 강하여 소화불량, 위염, 복통등 소화기 장애에 쓰인다.
간 기능을 강하게 하고 혈액순환을 좋게 한다고도 한다.
또한 자주쓴풀의 성질은 차가운 성질이어서 몸 안의 열을 떨어뜨리고
체내의 잉여 습기를 제거하는 작용을 한다.
그래서 각종 염증 질환에 두루 쓰이며 정신 안정에도 도움이 된다고 한다.
그래서 이 자주쓴풀의 약효는 상당히 강하게 작용 하므로
평소에 아프지 않은 사람이 자주 복용하여 과하게 사용하면 정작 아플때는
별 효과를 얻지 못한다는 사실을 주지해야 하며
몸이 쇠약하거나 냉한 체질에는 찬 성질의 자주쓴풀이 잘 맞지 않으므로
복용에 신중을 기해야 함은 당연한 귀결이다.
가을 이라고는 하지만 산을 오르면 여름과 달리 햇빛이 더 밝고 강하게 느껴진다.
그것은 아마도 여름처럼 높은 습도가 없으므로 박무현상이나 연무현상이 없이
곧바로 투과되는 태양의 자외선 때문이 아닌가 싶다.
실제로 태양과의 거리는 여름보다 멀기 때문에 적외선은 상대적으로 약하여
열의 효과는 약할지 모르지만 빛으로 투과되는 자외선은 여름보다 가을이
더 강렬하지 않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이유로 산을 오르면 여름 산 보다 가을 산이 훨씬 더 밝고 상쾌하며
산을 오르는 쾌감을 배가 시켜 준다.
이렇게 오른 산 정상에서 시원한 바람에 땀방울 씻어내며 길섶에 피어있는
아름다운 꽃들을 마주하는 즐거움을 어떻게 말로 표현 할 수 있을까.
그것은 아마도 진정으로 자연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노력이 없이면
온전한 아름다움을 느끼기엔 부족하지 않을까 싶다.
저물어 가는 계절의 어귀에서 맞는 노랗고 빨갛고 희고 보랏빛 나는
여러 야생화를 접하며 살수 있다는 것도 어찌 보면 자연을 사랑하는 사람들 에게만 주어진
대단한 축복이라 아니 할 수 없을 것이다.
다시는 되돌아오지 않을 이 계절이 다 가기 전에 한번이라도 더
이렇게 아름다운 자연과 마주하는 시간을 가져보려 노력하는 것이
건강한 삶의 아름다움을 더더욱 배가 시키는 일이 아닐까 싶다.
녹제/조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