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귀나무(합환목:合歡木)이야기
피곤에 지친 봄이 사르르 졸면
햇살 끌어안고 입맞춤 하던 여린 잎
겨드랑이 스치는 더운 바람에
파르르 떨다
다소곳이 새침 떠는 여름이 핀다
조악한 대롱에 매달린 수실처럼
꽃술 풀어 헤치고
의식 몽롱한 향기 만들어
수없이 갈라진 속살 사이에 남긴
진득한 환락의 욕정과 꽃 비린내
핑크빛 사랑이 전설처럼 피어나면
모두 깨어 있는 벌건 대낮이라도
향기가 물결처럼 일렁이는 방 앞에서
꿈같은 염문(艶聞)을 상상하는 군상들은
시들어 떨어지는 낙하의 전율을 두려워한다
피고 져야만 하는 꽃이 어디 나 뿐이랴
수줍은 연정 가득 머금고
등 뒤로 숨어버린 어제의 발끝에서
잊지 못할 사랑을 이어 가고픈 꽃잎만
허공에 매달린 채 서럽게 운다
계절이 돌고 돌더니 벌써 한해를 마무리해야 하는 계절이 왔다.
노랗고 빨간 단풍잎들이 온통 황홀한 색감으로 산이며 들을 채색 하고
순수 그대로의 색감으로 매일 아침 다른 수채화를 그려 놓았었는데
갑자기 한 이틀 비가 내리고 나니 썰렁한 겨울 냄새가 난다.
날이 추워지면 가진 것 많은 사람들이야 별반 문젯거리가 없겠지만
넉넉지 못한 서민들의 삶은 더 팍팍해지게 마련이다.
총선이다 대선이다 투표를 할 때마다 내가 선택한 국민의 대표가
좀 더 나은 정책을 입안하고 고시(告示)해서 내 생활이 윤택해 지기를
간절히 희망 하지만 언제나 지나고 나면 말짱 도루묵이란 생각들일게다.
지난 정부에서 갑자기 생겨난 수많은 공중파 방송 채널들에서도
틈만 나면 현 정국과 민생에 관한 이야기다.
예나 지금이나 정치권력에 대한 욕망으로 권모술수(權謀術數)가 난무하고
상대방을 비방하며 모략하는 것이 정치인들의 일과처럼 되어
눈만 뜨면 상대방에 대한 공격 루트를 찾고자 급급하고 꼭 마땅한 핑계 거리로
국민을 위한 민생을 살리기 위해서란 말로 겉포장을 한다.
사실 그런 모양새를 바라보는 국민들이 고운 시선으로 볼 리가 없다는 것을
뻔히 알면서도 국민이란 존재들의 의사는 자신들의 이권에 비하여 아주
소소한 존재로 여기며 어떻게든 내 이익만 챙기면 된다는 생각에
일반 국민들의 반대의사는 전혀 개의치 않는 것 같다.
아니 오히려 그러한 국민들의 생각을 수용하여 자신들의 결정을
철회 하는 것이 오히려 더 못난 짓이라고 보일 것 같다는 자기당착에 대한 아집으로
똘똘 뭉쳐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라는 말이 있다.
어찌된 영문인지 요즘은 평천하(平天下)와 치국(治國)을 먼저하고
그다음에 제가(齊家)를 하고나서 모든 것을 이루고 나면 수신(修身) 하겠다는 생각인지
당최 모를 일이다.
지난 10월에는 수안보에서 한춘제전 행사가 있어 참석을 했었다.
애란인들의 잔치답게 온 가족이 함께 참석하여 너무 즐겁게 가을 축제를
즐기는 모습을 보니 난초란 매개체로 인하여 모인 전국 각지의 다양한 사람들이
말 그대로 한 가족처럼 어울리고 있다는 생각에 정말 흐뭇한 느낌이었다.
필자도 체육 활동은 상당히 적극적이어서 족구선수로 참가를 하면서
팀 선수가 모자라 필자의 아내를 선수로 기용하는 신의한수(?)를 발휘하였는데
여자선수가 끼어 있다며 동정심과 더불어 아량(?)까지 베풀어 주시다 보니
어찌어찌 우승까지 하게 되어 다른 회원님들께 너무 감사하고 죄송하다는 생각도 든다.
지난 가을을 회상 하면서 가정이 화목하기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다보니 문득 생각나는 나무가 있다.
봄이 지나면서 약간 무더운 듯 한 느낌이 들기 시작하는 6월이 시작되면
야트막한 야산이나 들 어귀에 몽환적인 핑크빛 색감으로 가냘프게 하늘대며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만큼 아름다운 향내를 뿌려대는 꽃이 피는데
이 나무가 바로 자귀나무 이다.
이 자귀나무는 밤이 되면 잎이 신경초처럼 움츠러들며 접혀 지는데
밤이면 귀신처럼 잠자는 나무라 하여 “자귀”라는 이름을 붙였다고도 하며
스스로 부끄러워 잎을 접는다 하여 자괴(自愧)나무라 부르기도 한다.
다른 이름으로 합환목(合歡木)이라 부르기도 하는데 이 나무를
약재로 이용하여 달여 먹으면 부부가 꼭 함께 침실에 들만큼 부부관계가
좋아 지며 또한 부부가 화합해서 희열, 환희를 얻게 되므로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하고
혹은 무정하게 떠난 사람의 정(情)을 돌아오게 하는 나무라 하여
유정수(有情樹)라고 부르기도 한다.
꽃의 모양새는 꽃이라 할 수도 없으리만치 색실 뭉치를 풀에 헤친 듯
붉고 길게 뻗은 꽃술이 가냘프지만 그 향내는 여타 꽃들의 향기에 비하여
전혀 손색이 없는 은은하고 상큼한 몽환적인 향내를 풍겨 낸다.
한방에서는 이 자귀나무의 껍질을 9~10월에 채취하여 합환피(合歡皮)라는 이름으로
약용 하는데 우울증이라 부르는 해울작용을 해소 시키는데 이용한다.
따라서 주로 불면증, 억울상태등 신경쇠약과 환각증세를 다스린다고 한다.
외용을 주로 하며 뼈가 부러진 곳에 붙이면 부종을 내리기도 하고
살충 작용을 하는 성질도 있어서 복용을 할 때는 반드시
한의사의 지시에 따라야 한다고 하므로 주의가 요구되는 약재라 하겠다.
문헌에는 약재의 성질이 평하고 독이 없다고는 하지만
수년전에 한참 약초 연구에 몰두하던 마루타 정신이 투철한 필자가
시험 삼아 합환피를 달여서 복용해본 결과 위가 대단히 부담을 느끼고
소화가 잘 안 되는 것으로 보아 소량의 독성분이 있거나
아니면 조금은 차가운 성질을 가진 약재가 아닌가 생각 된다.
고서인 만선식물자휘<萬鮮植物子彙>에는 합환목을 관상수, 도로수,
풍치수 등으로 조선과 만주 각지에서 재배 된다고 하였고
목재는 건축이나 가구재에 쓰였다고 하였으며 수피는 흥분제, 강강제, 구충제등으로
쓰여 졌다고 기록하고 있는바 자귀나무는 아주 오래전부터 우리의 생활 속에서
우리와 함께 삶을 가꾸어 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듯 싶다.
특히 흥분제로 사용 되었다고 하는 내용으로 봐서는 이 약재를 달여 먹고 나면
기분이 풀어지고 나른해 지는 항억울 작용으로 인하여
자연스럽게 부부간의 사랑 행위가 이루어짐으로 해서 항상 담장 곁에 심어두고
상복 하고자 했던 것이 아닌가도 생각된다.
최근에야 비아그라니 뭐니 강정 작용 및 익정 작용이 강한 약들이 개발되고
향정신성 의약품들이 많아져서 성에 관한 질환들 중 육체적 질환은 물론이요
정신적인 질환들까지를 쉽게 처방하고 다스릴 수 있게 되었지만
이러한 약품이 개발되기 전에는 모든 것을 자연의 약초들에게
의존할 수 밖에 없었을 터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런 나무 한그루가 앞마당에 심어져 있음으로 인해서
상당히 안정적이고 행복한 부부생활이 영위되었지 않았을까 싶다.
글을 쓰다가 달력을 보니 벌써 입동이 며칠 지났다.
날이 기울수록 추워진다는 뜻 일게다.
이사한지 얼마 되지 않은 필자도 벌써부터 아내가 눈만 마주치면
난방비가 걱정이라며 한숨을 쉰다.
서민들의 한숨이란 것이 어떤 것일까를 생각하다가 문득 얼마 전에 읽어 본
다산(茶山) 정약용 선생의 여유당집에 수록된 글귀가 한줄 생각나서
이곳에 옮겨 본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수령을 위해서 생겨난 것인가.
백성이 곡식과 옷감을 바쳐 수령을 섬기고 또 수레와 말과 하인들을 내어
수령을 맞아들이고 떠나보내며, 또는 기름과 피와 진액과 골수를 다 없애서
그 수령을 살찌우고 있으니 백성이 과연 수령을 위하여 생겨난 것인가?
그렇지 않다 수령이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이다.“
제세안민(濟世安民)이라는 말이 있다.
세상을 구하고 백성을 편안히 한다는 말로 중국 역사상 가장 추앙을 받는
당 태종인 세민(世民)의 이름도 이 말에서 유래 되었다고 한다.
해가 저물어 가고 겨울이 깊어지면 서민들의 삶은 더욱 궁핍해지기 마련이다.
아무쪼록 나라의 관리로 선택되신 분들께서는 당리당략(黨利黨略)에 앞서
서민들이 마음만이라도 여유롭고 편하게 겨울을 날수 있도록
많은 배려와 정책을 실천하여
올 겨울이 조금은 더 따뜻한 겨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 간절하다.
녹제/조연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