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물을 보는 눈
동일한 사물을 두고 세상을 보는 눈에는 두 가지가 있다.
좋은 마음으로 남을 보는 눈이고,
부정적인 마음으로 사물을 보는 눈이다.
무학대사가 기거하는 도봉산의 절을 찾은 이태조가
무학 대사와 곡차를 마시다
문득 대사에게 이런 농을 시작하였습니다.
이성계가 "오늘 하루만 서로 마음속에 있는 걸 터놓자"고 제안했다.
먼저 이성계가 무학대사를 보고
"요즘 대사께서는 살이 뚱뚱하게 쪄서 마치 돼지 같소이다."며 한수를 날렸다.
"소승이 돼지처럼 보이십니까?
전하께서는 언제 보아도 "상감마마는 부처로 보입니다."라고 응수했다.
이성계는 자기가 먼저 무학대사에게 무례한 말을 하면 대꾸도 그와 비슷할 거라 생각했다. "아니, 격의 없이 서로 농을 즐기자고 해놓고,
대사께서는 과인을 부처님 같다고 하면 어쩝니까?"
약간 열을 받은 이성계가 "대사께선 성질도 없소"라고 되물으니,
무학대사는 "허허,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이라고 돌려쳐 이성계의 말문을 닫게 만들었다.
"예, 본시 돼지의 눈에는 모든 것이 돼지로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모든 것이 부처님으로 보이기 때문이지요."
비슷한 말로 唯心所現 (유심소현)이 있다.
모든 것은 마음 속 나타남에 있다.
"사람은 자신이 생각하는 모습대로 되는 것"이라는 뜻이다.
같은 현상이라도 마음먹기에 따라 좋은 일이 될 수도 나쁜 일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들게 하는 말인 것 같다.
불교 능엄경에는 일수사견(一水四見)이란 말이 나옵니다.
같은 물이지만 천계에 사는 신은
보배로 장식된 땅으로 보고,
인간은 물로 보고,
아귀는 피고름으로 보고,
물고기는 보금자리로 본다는 뜻입니다.
보는 이의 시각에 따라
각각 생각하는 견해가 다름을 비유적으로 일컫는 말입니다.
결국 사람은 자신이 보는 시각대로
세상을 보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
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 이란'어원 유래
최고 권력자와 고승(高僧) 간의 유명한 일화에 나오는 '豕眼見惟豕 佛眼見惟佛(시안견유시 불안견유불)'은 원래 부처님이 하신 말씀이다. 부처님을 잔치에 초대한 왕과 간신들이 부처님을 시험하고자 음식을 모두 고기로 준비 했다. 밤을 지새워 새벽까지 먹고 놀다가 사람들을 가르치느라 지치고 허기에 찬 부처님에게 왕이 물었다.
"지금 기분이 어떠시오?" 그러자 부처님은 "“豕眼見惟豕,佛眼見惟佛矣" 즉 "돼지의 눈에는 돼지가 보이고, 부처의 눈에는 부처가 보인다"고 말한데서 유래했다.
이 말은 "생각하기에 따라 달라진다" "마음 먹기에 달렸다' 등으로 간략히 해석되지만, 본래는 "먹는 것이 삶의 목적이 되어 善(선)함을 쌓지 않는 인간은 돼지와 같고, 부처의 자비로 세상을 보고 실천하면 부처가 된다."는 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