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산에는 그렇다 할 만한 산이 없다.
미륵사지 석탑이 있는 미륵산이 있지만 해발 430m의 야트막한 산이다.
미륵산 바로 바로 옆자락에는 서동이 어릴 때에 마를 캣다는 용화산이 있지만
그도 340m에 이르는 아주 야트막한 야산에 불과하다.
멀리 나가지 말고 익산 시내에서 찾자면,
잔을 엎어 놓은 형상의 배산(杯山)이 있다.
그 역시 85m에 불과하여 동산에 가깝다.
익산은 그야말로 산이 없는 평야지대이다.
그래서 풍수지리학적으로 이름에라도 산을 보태고 더해서 익산(益山)으로 불린다.
휴일 오후, 땀 좀 뺄 겸 가까운 용화산을 찾았다.
미륵산은 고도가 낮지만 평지에 우뚝 솟아 있어 상대적으로 높게 느껴지기에 충분하다.
또한 온통 바위가 많아서 비교적 가파르다.
산은 낮지만 정상에 오르는 등산로는 족히 예닐곱개나 되어서
가파른 암벽쪽을 타거나,
둘레길을 만끽하거나,
인조데크의 계단을 오르는 등 본인의 취향에 맞게 선택할 수가 있다.
그러나 요통이 심한 탓에 순탄한 평지가 길게 늘어선 용화산을 택했다.
산은 야트막하지만 우거진 숲은 울창해서 좋다.
기실 산은 동네 뒷산이라도 결코 얕볼 상대가 아니다.
묘하게도 산은 그만큼 신비하고, 또한 왠지 모를 경외감 속에 깊이가 있다.
오늘은 헬기장까지 가기로 한다.
약 5km 되는 거리이다.
왕복코스는 모르긴몰라도 3시간 정도는 걸어야 한다.
비교적 순탄한 평지 코스이다 보니,
걷기에 부담이 없어서 좋다.
그러다 보니 올라갈 때와 내려올 때의 시간 차이가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그래도 상관 없다.
모처럼 느껴보는 싱그런 숲의 냄새와 바람과 기운이 여간 반가운 게 아니다.
약 1km쯤 올라왔을까?
살짝 숨이 차려고 하는데,
새총가지처럼 생긴 두 나무를 땅에 버팀목으로 박아놓고
통나무를 가로질러 얹어서 만들어 놓은 나무의자가 있다.
여기서 잠깐 물 한 모금 마시고 쉬어가기로 한다.
정말 고마운 일이다.
누가 이 곳에 이처럼 근사한 의자를 만들어 놓을 멋진 생각을 했을까?
감사한 마음이 절로 인다.
나무의자가 운치가 있어 스마트폰을 꺼내어 사진 한 장 담기로 한다.
온몸엔 땀이 주루룩 흐르지만,
몸은 한결 가벼움을 느낀다.
간간히 바람골을 만날때면 흘린 땀이 식으면서 시원함을 선사해준다.
정말이지 오길 잘했다.
여뀌, 닭의장풀, 범부채, 자귀, 맥문동, 달맞이꽃, 망초꽃, 패랭이꽃, 미국자라공, 떡갈나무, 물푸레나무, 송장메뚜기, 섬서구메뚜기, 방아깨비, 어치, 직박구리, 동박새, 청설모, 매미...
이들이야말로 이 산의 진정한 주인이다.
참나무곁을 지나면서는 또 다른 주인, 장수풍뎅이를 만났다.
녀석은 아주 멋진 투구를 뽐내려는듯 내 발길을 붙잡았다.
어이, 그냥 가지 말고 잠깐 나랑 놀아줘, 부탁이야.
그래, 녀석과 씨름 한 판 하며 잠시 놀아주기로 한다.
상대가 누구든 상관없이 녀석은 절대 물러서지 않는다.
무모한듯 당당한 기상이 멋지다.
휴일 용화산에 갔다.
두 장의 사진을 담아오다.
작고 보잘 것 없는 소소한 것들로 잠시 마음이 풍요로와진 느낌이,
그냥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