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담초(금작근:金雀根) 이야기
꽃이 핀다
노란 꽃그늘 피어 오른다
꽃이 피면
한때 초췌하게 가라앉았던 기쁨들
함께 날아오르고
노란 꽃 날갯짓은 화사한 상상들을 부른다
꽃물 들어 노랗게 일렁이던 그늘 사라지면
너무 적막하고 적막해서
줄기는
안간힘으로 둥글고 푸른 이파리를 내미는데
불현 듯
이별의 손짓으로 매달려 아우성치던 군상들
찰나에 사라지면서 피워 올린 아픈 흔적들
가시로 돋아나면
전설 속에서나 그리 했을까
날아올라 사라져 가는 꽃의 젖꼭지를 물고
달콤하게 취해 가는 오월
곱디고운 단내에 취해서
또 다른 기쁨을 남겨 놓고 사라져간 계절을
아무도 되돌아 기억하지는 않는다
예로부터 우리의 신화나 전설, 그리고 우화를 보면 아주 성스러우며
영험하고 신성시 되는 동물들이 여럿 등장 하지만 그중에서도 가장
화려하고 우아하며 감히 범접할 수 없는 동물로 봉황을 얘기한다.
봉황은 상상 속에 등장하는 새로서 닭의 머리와 뱀의 목을 가졌고 제비의 턱과
거북이의 등, 물고기의 꼬리모양을 하고 있으며 몸과 날개 빛은 오색이 찬란하며
다섯가지의 울음소리를 내는 새이다.
수컷을 봉(鳳)이라 하고 암컷을 황(凰)이라 하여 이 한쌍을 봉황(鳳凰)이라 하는 것이다.
이렇게 아름답고 우아하며 환상적인 모습으로 기다란 꼬리를 늘어뜨리고
양 날개를 퍼덕이며 하늘을 날아오르는 모습이란 상상만 하여도
참으로 신비롭고 눈이 부셔 감히 쳐다볼 수 없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예로부터 봉황은 일인지하(一人地下), 만인지상(萬人之上)의 위엄을 갖춘
황제의 권좌위에 날개를 접고 앉아 범인들이 감히 고개를 들어 쳐다 볼 수 없는
황제의 권위를 상징적으로 대변하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신비롭고 아름다운 봉황의 느낌과 형상을 가지고
피어나는 야생화가 있으니 그 꽃이 바로 골담초이다.
골담초는 금계아(錦鷄兒)라고도 부르는데 꽃이 한창 일 때는
가녀린 줄기에 소담스레 달린 꽃송이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가지가 땅에 닿도록 흐들어지게 피는 아름다운 꽃이다.
날카로운 가시가 제법 많이 달려 있기도 한 이 골담초는 우리의
뼈에 관한 질환을 다스리는 약초로도 이름이 높다.
그래서 골담초(骨擔草)라고 부르며 다른 의미로 골담(骨痰)을 치료하는
약이라는 의미도 담겨 있다.
중국이 원산지로 되어 있긴 하지만 이미 오래전부터 우리의 산지에서 자라고 있는
우리 식물이기도 하며 예전엔 시골 담장 아래에 관상용 및 듬성한 울타리
대용으로도 많이 애용 되었던 정원수이기도 하다.
옛 고서인<만선식물지휘>에서는 금작화(金雀花)는 꽃이 결명(決明)과 같으며
줄기는 구기(枸杞)와 같고 가시가 있으며 잎은 둥글고 끝이 날카로우며
사람들은 꽃을 채취하여 먹는다고 기록하고 있다.
해서 어찌 보면 전설 속에 존재하는 봉황의 다양성과 매우 상응되는 부분이 있어서
이름 또한 그에 걸맞게 붙여졌는지도 모를 일이다.
골담초의 맛은 쓰고 매우며 성질은 평하나 독은 없다.
또한 술에 우려내어 마시면 그 향기가 매우 뛰어나 여타의 명주에 비하여
손색이 전혀 없는 약주이기도 하다.
골담초의 약효는 풍기를 없애며 통증을 가라앉히기도 하고
혈압을 떨어뜨리며 폐 기능을 보하고 소화기를 강하게 하는 약효가 있다고도 하지만
무엇보다 골담초의 주된 약성은 신경통과 관절염이다.
사람의 질환 중에서 뼈가 아픈 것만큼 고통스러운 질환이 어디 있으랴.
하여 신비하고 고귀로운 봉황을 연상시키는 꽃인 만큼 우리의 가장 아픈 부위를
어루만지는 효험이 있다는 것이 어쩌면 당연한 일인 것 같기도 하다.
시골집 담장 밑에서 엎드린 채 자라며 조그만 바람에도 가녀린 줄기가
하늘하늘 흔들리며 춤을 추듯 휘청 거릴 때 는 위태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 가냘픈 가지에 헤아릴 수 없이 많은 꽃송이를 매달고도 거뜬히 피워내며
잎 받침이 변해서 생겨난 날카로운 가시를 마디마디에 숨기고 있어서
누가 감히 손을 댄다거나 꺾을 수 없는 강인함을 지니고 굳건히 담장을 지켜낸다.
그 꽃의 생김 또한 너무 아름답고 색감이 고운데다 향기까지 좋다하여
필자도 진득하게 우러난 술맛이 보고 싶어 금작화(金雀花)를 얻어 보고자
수차례 시골집 담장 밑을 어슬렁거려 보았지만 막상 남의 집 어귀에 심어진
꽃을 안면몰수하고 따 올 수 있는 강심장이 아닌지라
그저 흘깃 흘깃 훔쳐보다 겨우 코끝만 대고 향기를 맡고 오는 일이
전부였으니 아마도 직장을 은퇴하고 난 후에 내 집 한 채 짓고 앞마당에
심어놓고 따지 않은 다음에야 이룰 수 없는 희망임을 고개를 꺾고 체념한 바가 있었다.
5월 중순이 되어 초록이 짙어갈 즈음 잎보다 더 커다란 꽃송이를
마디마디 매달고 피어나는 금작화의 눈부심은 실로 여타의 꽃들을
그림자로 만들어 버리기에 충분한 아름다움을 지녔다.
정감 가득 묻어나는 시골집 담장 위를 다소곳이 감싸 안은 채
환한 빛으로 피어난 금작화 송이송이 마다 달콤한 꽃꿀이
이슬처럼 맺혀 붕붕거리는 날벌레들이 앞 다투어 몰려드는 그 광경이란
꿈속에서나 동경했던 풍경이라고나 할까?
아찔한 현기증이 느껴질 만큼 아름다운 모습과 향기를 전해주는
꽃이기에 간혹은 상상만으로도 먼 기억 속에 가물거리는
아릿한 유년기의 추억들이 떠올라 실소를 머금게 하기도 한다.
서양인들은 오월을 장미의 계절이라 하기도 하고 계절의 여왕이라고
부르기도 하지만 필자가 생각하는 오월은 금작화의 계절이고
또한 금작화가 있으므로 이 계절이 여왕이라 불릴 수 있음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다는 생각이 드는 이유이기도 하다.
은퇴 후엔 시골에 전원주택을 짓고 나서 낮은 울타리 밑에
꼭 금작화를 심어 오월을 품안에 간직하고 싶다는 소망은 언제쯤 이뤄질까
의기소침해 하는 사이 어느덧 이 오월도 기울어 간다.
녹제/조연상